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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영 산문집, 진부한 에세이를 읽고

오렌지시리 2022. 3. 1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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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관계에 많은 고민은 한 것 같다.

 

젊은 날 방황하면서 끄적이는 글이었고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날, 걱정이 많은 날 끄적였던 걸 한데 모아둔 글이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기에는 당장 본인의 삶부터가 답이 보이지 않아 질식할 듯 답답하고, 선뜻 내미는 선의에는 의심부터 해봐야 하는 불신사회를 정면으로 관통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타인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삶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나 또한 드라마, 타인의 이야기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동질감과 공감이 사뭇 달라진 건 언제부터 였을까.

 

깊지 않은 인사치레 같은 마음으로 변했다.

 

생각하지 않고 내뱉고 마음을 들이지 않고도 나오는 반응 같은 거다.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고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바쁜 삶이 때로는 삶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서 술을 진탕 마시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걸 싫어했던 것 같아요'

 

20대의 많은 날을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다.

 

그냥 나를 받아준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그들도 사실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고 함께 있을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 이유가 뭐가 대수라고 그 많은 시간을 내어주었을까.

 

아직까지도 후회가 남는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차라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힘겹게 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나를 그렇게 내몰았다. 내 맘대로 결과를 내놓고 시도도 하지 않은 채.

 

'아주 소수의 사람들과 서로가 닿을 수 있는 관계의 극한까지 닿아보는 것. 그래서 그들과 함께 쓸쓸하고 적적해 보이지만 참 행복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하지만 마음과 감성만은 항상 고양된 채로 삶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한 때 인싸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런 말을 듣는 게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도 되었다.

 

예전부터 꿈꾸던 걸 어느 날 이루었는데 나는 나 자신이 어설픈 걸 알았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좁지 않은 마음으로 그렇게 많은 이들을 챙겼고 불행하지 않은 내 삶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 그런 순간들이 많이 흐려졌다. 더 큰 행복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내 삶은 한층 단순해졌지만 더 행복해졌다.

 

한 사람에게 쏟기에도 부족한 시간과 에너지인 걸 알았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지 않아도 되는 순간은 서로 아껴주고 지켜주고 싶은 사랑하는 순간임을 30대에 깨달은 건, 지금이라도 깨달은 건 참 다행인 것 같다.

 

'사람 일은 모르기 때문에 흔히들 인연이라면 재회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게 각자의 생에서 천천히 잊혀 갈 것이라는 걸 우리는 압니다. 보통의 경우에 아무도 지인과 이별하진 않고, 연인과 작별하진 않으니까 말입니다. 애초부터 무게가 다른 두 가지의 말이었습니다'
'망설이는 동안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천천히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연인과는 이별을 하고 지인과는 작별을 한다.

 

만나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있고 만나지 않으면 끊어져야 하는 관계가 있다.

 

우연을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우연 앞에서 용기 내보지도 못했다.

 

누가 이별을 하고 싶고 작별을 하고 싶을까. 한 걸음 더 잡고 한 걸음 더 용기 내는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만약에라도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끝까지 용기 내어 볼 거다. 그게 더 후회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이렇게 하나둘 사라져 갈 수밖에 없다는 게 너무도 아쉽다'

 

저자는 책 비디오 대여점에 폐업 종이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당장의 편리함만 바라보는 이 세대가 참 아쉽다고 했다.

 

결국 다수가 좋아하는 것만 살아남는 건 어쩔 수 없는 건데 그게 아쉬운 것도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우리가 시간을 절약하려고 아날로그를 버리고 있는 건데 과연 시간을 절약해서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는지,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시간이 없이 사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문제다.

 

'당신도 나처럼 얼른 나만큼의 감정을 표현해달라는 서두름이 이제 막 온기로 따뜻해지려 하는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붕괴시킨다'

 

좋아함의 정도는 다 똑같은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관계는 항상 나의 서두름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 오래오래 반성했는데 맘처럼 되지 않았고 별 변화 없이 똑같이 살아갔다.

 

지금은 그런 서두르는 마음을 받아주는 사람을 만나서 오히려 관계에 대한 집착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내 안에 걱정과 불안이 그렇다고 없진 않지만 고민과 걱정으로 쏟는 시간은 상당수 줄었다.

 

'당신은 마치~처럼 그것을 잘하네요'라는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을 과거의 고독으로 데려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게 만든다. 다 지난 일이라고, 한때는 그랬었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누군가는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너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아무것도 못 될 줄 알았다고 하지만 인생은 꼭 남들이 생각하는 모범적인 답안만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하나만 갖고 성공하는 사람보다 이것저것 잘해서 성공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시대는 변했고 나도 내가 걸어온 길을 놓은 디딤돌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밤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새벽이 되면 그 촉박함이 더욱 심해져서 쏟아지는 잠에 쓰러질 때까지 저항을 하죠'

 

나도 참 밤을 좋아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누리는 저녁시간이 안 갔으면 좋겠다고 발버둥 쳐도 시간은 가더라.

 

아침은 무언가 하기엔 여유가 없다.

 

기다리고 있는 스케줄이 나의 생각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걸까.

 

하고 싶은 일도 즐겁지 않은 아침이다.

 

낮부터 여유가 있는 날은 그렇게 빛이 좋다. 아, 결국은 일이 싫었던 거였을까.

 

'망설이던 고백이든 담담한 이별이든 마음을 꺼내 보여야 하는 일들은 낮보다는 어둠에 가려질 수 있는 밤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썩은 줄이었다 해도 결국 모든 뒷감당은 썩은 줄을 잡은 본인의 몫인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관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건 생각보다 잔혹한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을 질 줄 아는 거라 했는데 어른도 사실 잘 모르고 선택을 하는 거다. 그냥 내가 한 선택이니까 책임을 지는 것뿐이다.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 걸 아니까.

 

그러니까 다음의 선택은 늘 후회가 없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 수밖에. 그렇게 당했으니까.

 

'나 하나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세상이기 때문에 굳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건 신경 쓸 겨를이 없거니와 그게 상당히 소모적인 작업이라는 걸 알게 됐다'

 

저자는 나를 증명하는 수고를 어느 날부턴가 멈췄다고 했다.

 

그 노력들이 아까운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이 가는 것이 아깝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것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삶은 그렇게 녹녹지가 않다.

 

나도 열심히 살고 있지만 요즘은 다들 열심히 사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지 않나.

 

'유치원 때 옆에 앉은 친구가 내 빵을 앗아간 기억은 선명한데 군 시절의 기억에만 유독 짙은 안개가 드리운 것을 보면 아마 그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소모적이고 무료했기 때문이 아닐까. 때마침 손목을 긋다가 실패한 나머지 흉터 자국이 사뭇 웃기게 남았던 선임의 얼굴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여자라 잘 모르지만 남자에게 군대란 학교보다도 더 징글징글한 집단 시스템이지 않았을까.

 

나는 학교 다닌 12년이 그렇게도 싫었다.

 

돈 버는 건 힘든 일이지만 학교생활에 기억보다는 꽤 괜찮은 기억들이었다.

 

진상 손님을 만나는 것도 갑질하고 텃세 부리는 먼저 온 나이 어린 직원들도 학교 옆자리에 있던 어린 꼬맹이들보다 덜 무서웠다.

 

'김밥 파는 할머니가 건물 기둥 옆에 쭈그려 앉아있다. 꺼내놓은 김밥을 지긋이 바라보며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로 추위를 견디고 있다. 그녀는 무엇을 품고 이 겨울을 버텨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그녀처럼 이 겨울을 버텨내게 하는 무언가를 과연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힘든 일을 버텨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래서 엄마가 위대하다고 했던가.

 

함께 살아갈 사람을 만나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하기 싫은 일도 좀 더 힘내서 하게 하고 그 일조차도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적어도 나로서는 행복한 순간에는 어떤 것을 기록하지 않아도 그 순간 자체를 만끽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무튼 나는 별일 없이 살아간다. 만족하기보다는 불평을 많이 하고, 항상 내면에 화가 많은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불행해하며, 언제나 이방인처럼 이곳을 부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매일 행복해 보인다고. 항상 웃고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나는 슬픈 일이 없으면 웃었다. 힘든 일이 없으면 웃었다.

 

남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웃을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슬픈 일이나 힘든 일이 없어서 웃은 거였다.

 

그렇게 힘든 일이 없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좋은 일이었으니까. 그런 평범한 상태가 행복이었으니까.

 

항상 행복한 순간에는 기록을 멈췄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이 슬프고 괴로운 날에는 어김없이 펜을 들었다.

 

펜을 들지 않으면 그 밤을 보낼 수가 없으니까.

 

나 이렇게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말해도 되는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는 것도 펜을 드는 것과 같다. 형태는 다르지만 지금도 여전히 삶이 괴로운 순간엔 블로그행이다.

 

'갑자기 던져진 외로움 속에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 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지요. 모든 사람들이 처음부터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할 순 없으니까 말입니다. 대부분은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지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였을 테고 자기만의 방법을 무던히도 찾았을 거라 봅니다'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타입이다.

 

북적이던 곳이 조용해지면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아 더 길게 놀고 싶고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거실에서 그다지 재밌지도 않은 프로를 보며 오래 앉아 있는 것도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엄마와 함께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그 순간이 오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저자의 말처럼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서운함이야말로 관계를 가장 조용하게 제거할 수 있는 소리 없는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괴물이 깨어나기 전에 그 무언의 움직임을 알아채고, 그것을 밖으로 꺼내 주는 용기를 내야 하지만 때로는 관계가 불편해진다는 이유로 침묵하고야 만다'

 

좋아하니까 더 많이 서운한 거라는 걸 알면 더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을 똑같이 따뜻하게 대해준다면 그런 서운함이 더 큰 사랑이 되어 돌아온다.


나는 나만 이렇게 관계에 대한 집착이 큰 줄 알았는데 저자를 보며 위안이 되었다.

 

나만큼이나 더 어설프고 더 서툴러서 후회하고 그렇다고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고 자신만 그렇게 깊은 관계를 원하는 것 같아 상처받는다. 알다가도 모를 종류의 사람이다. 나처럼 말이다.

 

그 많은 시간 숱한 고민을 했는데 사실 잊고 살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지난날 했던 심각한 고민들에 대해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그때 그런 고민들이 먼지같이 가볍게만 느껴지는데 그때는 그렇게 커다란 바위 덩어리 같았다. 다시 만나면 다 돌려주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지금은 그런 미워하는 마음조차 희미해졌다. 그런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지금도 여전히 고민이 있고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파서 못 자는 날도 있지만 이전의 날들보다는 우뚝 서 있는 걸 느낀다.

 

나로서 온전히 서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힘들어도 아파도 방황하지 않는다.

 

그날그날 내 인생을 산다. 오늘 게을렀다면 내일 열심히, 오늘 열심히 살았다면 내일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좋고 더 나아질 다음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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