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니스

시리의 포잡 이야기 - 두번째, 피아노 방문레슨

오렌지시리 2021. 4. 25.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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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몬을 할 때만 해도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 몸 하나 건사 못하는 내가 다른 사람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잘 하게 될 줄도 몰랐고 시작도 갑작스럽기 그지 없었으니까. 그런데 6년이란 시간이 많이 길었나보다. 생각보다 나는 많이 변했다.

1:1로 대화하는 게 좋았던 나는
대중 앞에서는 것보다 1:1로 무언가를 설명해주고 대화하는 게 좋았고
적성에 딱 맞았다.

학습지교사 6년 생활은 괴롭고 힘들었지만 내가 무얼 잘 할 수 있는지 알게 해줬고 불편했던 부분이 편해지도록 만들어줬다.

회사에 대한 불만으로 나오게 되었지만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지금은 꽤나 감사하고 있다.
어머님과의 통화, 아이들과의 소통, 20가구와의 스케줄잡기도 나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귀찮고 어떻게 하냐고 물을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 쉬운 일이 되다니 나도 신기하다.

피아노를 20년 넘게 쳤다.
피아노 치는 아는 언니들, 전공한 친구들, 전공한 선생님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피아노로 소통했지만 내가 피아노를 잘 친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피아노 잘 친다' 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피아노 좀 쳐줄 수 있을까요?' 라는 제안도 받게 되었다.
내가 어딘가에는 필요한 사람임을 알았다.

또 다른 제안도 들어왔다.
'피아노 레슨 해줄 수 있을까요?'
처음엔 어설펐고 주변에 많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부딪혀 가며 배웠다.

소개와 홍보를 통해 수업이 늘어나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아, 나도 누군가를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걸.

현실을 직시하자면 나는 전공자도 아니고 뛰어난 실력자도 아니다.
그래서 무섭기도 했고 그만큼 많은 저격글도 마주했다.

하지만 나는 목표가 있다.
나만큼은 피아노 치게 해줄 수 있다는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수업에 임한다.
그리고 피아노로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나의 진심은 이거였다.
'피아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다른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고!'
그런 진심이 통하는 걸까.
나와 수업을 연이어 가고 있는 어머님들과 성인분들은, 그리고 아이들은, 나를 좋아해준다.

'태권도보다 피아노가 좋아요'
'선생님 덕분이 진짜 많이 늘었어요'
'마음이 따뜻하신 분 같아서 신청하게 되었어요'
'덕분에 아이가 재밌게 배우는 거 같아 기특하고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선생님이 넘 잘 가르쳐 주신다고 엄마가 너무 좋아하세요. 꼭 오래 가르쳐주세요'
'아이가 피아노를 너무 좋아해서 저도 좋네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 * 가 되겠습니다'
'선생님 칭찬에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하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새님! 안될 줄 알았는데! 진짜 갑자기 쉬워졌어요! 신기해요!'

말 한마디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인사 치례일지도 모르지만
한마디 한마디를 이렇게 적어둔다.
감사해서. 또 마음에 새기기 위해.

매일 매일 교재를 만드는 일은 번거롭고 졸리고 피곤한 일이지만
이 교재를 뚱땅뚱땅 성공적으로 쳐서 뿌듯해 할 아이들과 수강생 분들을 생각하면 또 어느새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더 좋은 교재를 찾아 서점을 두 달에 한 번 꼭 간다.
시중엔 다양한 음악교재가 있어서 그 때 그 때 맞는 걸 선택해서 가르친다.
둘러보다보면 완벽한 책은 없다는 걸 실감한다.
아무래도 목표가 다르니 가르침의 모양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바꿔보기도 하고 합쳐보기도 하고 부분만 발췌하기도 한다.

이래서 선생님들은 꼭 교재를 만드나보다. 나도 언젠가 교재를 제작할 날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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